Osman Gazi’nin İznik(Nicaea) kuşatması ve Bafeus Savaşı, 오스만 가지의 이즈닉 공성전과 바페우스 전투 2. 오스만제국

1298~1301 Yıllarındaki GenelDurum 1298~1301년의 일반적인 상태, 정황

 

- 당시 오스만조는 여타 튜르크멘 공국들 중에서 두간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바페우스 전투 이전 Kastamonu(카스타모누:터키 북부)에서 이즈닉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Göynük-Taraklı지역을 통과해야 하며, 오스만은 Göynük,Sakarya 사이의 튜르크멘과 공국들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이지역에 있었던 Kösemihal 당시 오스만의 제후가 아니였으며 동맹으로 생각된다.

 

- Köse mihal(? ~ 1328, Abdullah Mihal Gazi)

그는 Mihal 가문의 사람으로 오스만의 측근으로 비잔틴의 군사령관 출신이다. 그의 본명은 Mikhael Kosses 이며 그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오스만이 Abdullah라는 이름을 제안하였고 압둘라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통상 압둘라라는 이름은 비무슬림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무슬림이 되면 가지는 이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출신 성분과 이름을 통해 그가 처음에는 비무슬림이 였다는 것을 수도 있지만, 그의 이름을 통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는 것을 수도 있다. 그는 오스만 가지와 함께 많은 전쟁을 함께하였고, Orhan 가지 시기 Bursa 원정(1328) 참여한 이후 사망하였다.

 

당시 쿄세미할은 오스만의 동맹으로 비잔틴과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는 그가 비잔틴 군사령관 출신이기 때문에 비잔틴에게는 많은 압박이 되지않았을까 생각된다.

 

파히메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Çobanoğlu(초반오으루:초반공국) 통치자 Yavlak Arslan(야브락 아르스란) 아들 Ali(알리) 비잔틴에 대한 공세적 정책을 취하였고, Adapazarı(아다파자르)지역과 Sakarya(사칼야)계곡지역을 공격하였다. 초반공국은 비잔틴으로 부터 카스타모누 지역을 차지하였다.

 

오스만은 Mouzalon(모우잘론) 대항하기 위해 Yalak Ova(야락 오바:야락 평원) 진출하였고, 사칼야에서 이즈닉으로 통하는 길을 통제하기 위헤서 Geyve(게이베), Lefke(레프케) 인근 지역에 까지 진출하여 강을 중심으로 비잔틴과 접하게 되었다.

 

당시 몽고의 침략으로 1298~1301년대에 튜르크멘 출신 변경의 공국들은 침략을 피해 비잔틴 영내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몽고는 1298 아나돌루에 새로운 군사령관 Bayıncar(바은자르) 또는 Bayancar(바얀자르) 보냈을 당시 아나돌루 셀축에 AlaeddinKeykubad 3(알라에딘 케이쿠바드 3) 새롭게 제위에 올랐고, 몽고의 장군 Sülemiş(슐레미쉬) 몽고에 대해 봉기를 일으켰다. 1299 겨울 슐레미쉬는 바얀자르를 처형하였다. 1299~1300 시기 몽고 장군 Kutluşah(쿠트루샤), Çoban(초반) 슐레미쉬의 반란을 진합하기에 급급하였다.

 

몽고에 대한 슐레미쉬의 반란은 변방 튜르크멘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몽고의 군대는 서진하였고, 에스키히사르-Bitinya(비틴야) 인근에 오스만 가지의 세력이 존재하였다. 슐레미쉬의 반란은 변경의 튜르크멘의 자립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튜르크멘들은 Amasya(아마스야)-Tokat(토카트) 인근 지역을 공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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