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man Gazi’nin İznik(Nicaea) kuşatması ve Bafeus Savaşı, 오스만 가지의 이즈닉 공성전과 바페우스 전투 1. 오스만제국

Söğüt’ten İstanbul’a

- Osman Gazi’nin İznik(Nicaea) kuşatması ve BafeusSavaşı, 오스만 가지의 이즈닉 공성전과 바페우스 전투,  Halil İnaçık


쇼유트텐 이스탄불라(Söğüt’ten İstanbul’a) 라는 책은 논문집으로 Colin İmber, Halil İnaçık 등 오스만조 역사의 석학들의 논문들을 묶어낸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을 번역,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스만조 역사에서 오스만 가지가 비잔틴 역사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오스만조 초기에 관한 역사를 알기 위해서 이 논문을 선택하였다. 



Osman Gazi’nin İznik(Nicaea)kuşatması veBafeus Savaşı


  İznik(이즈닉) 터키의 Bursa(부르사) 지역의 중심도시, Bafeus(바페우스) 전투는 이즈닉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Bizan(비잔틴 제국) Osmanlı(오스만조) 사이의 역사상 전투이다이즈닉은 1075~86  Andolu Selçuk(아나돌루 셀축) 의해서 건설되었다. 아나돌루 셀축의 통치자 Süleymanşah 1(슐레이만샤 1) 이즈닉을 수도로 삼았다. 하지만 1097 유럽의 십자군에 의해서 점령되었으며, 이후 비잔틴제국이 관할하였다. 1105년에 이즈닉을 아나돌루 셀축은 수복하지만 1147 다시금 비잔틴제국의 수중에 들어간다.

 

  Türkmen(튜르크멘)들이 아나돌루에 이동하여 Eskişehir(에스키셰히르) 인근지역에 정착하면서 비잔틴 제국과 아나돌루 셀축의 국경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튜르크멘의 이주를 통해서 아나돌루 지역에는 튜르크화가 진행되었다. 이들은 비잔틴제국, 아나돌루 셀축의 지배력이 확고하게 미치지 못하는 둘 사이의 국경지역에 자리잡으면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점차 성장하기 시작한다.

 

  비잔틴 황제 마누엘 1세 콤네노스는 상실한 아나돌루 지역을 수복하기 위해서 헝가리, 아르메니아 공국과 함께 1176 아나돌루 셀축을  공격하지만  Miryokefalon 전투(미르요케파론:미리오케팔론패배 하고 만다. 미르요케파론 전투는 비잔틴제국의 아나돌루 수복을 위한 최후의 공세적 원정으로 전투의 패배 이후 아나돌루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수세적 입장으로 변화한다


  미르요케파론 전투 이후 아나돌루 지역은 아나돌루 셀축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들은 이즈닉을 탈환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또한 Müslüman들은 Gazi(가지) 들을 중심으로 비잔틴을 상대로 성전을 벌였다. 하지만 아나돌루 셀축 그야세딘 메수드 2(Gıyaseddin Mesud 2, 1283, 1301, 1303~1308) 시기 몽고의 침략을 받으면서 아나돌루 셀축은 급격히 쇠퇴하며, 몽고의 속국이된다.

 

  이시기 비잔틴의 역사가 Pahimeres(파히메레스:1261~1307)의 역사서에서 OsmanAtman으로 처음 비잔틴 역사에서 출현한다. 그의 역사서는 당시 오스만의 군세와 바페우스 전투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오스만의 행적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사료로 현대에도 평가받고있다.


-- 논문에서 오스만조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즈닉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당시 아나돌루의 정세와 미르요케파론 전투를 이야기 하면서 오스만 출현 이전의 당시 아나돌루의 정세에 대해서 할릴 이날즉은 먼저 설명하고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점은 아나돌루 셀축과 비잔틴의 갈등 속에서 튜르크멘들이 점차 자립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후 벌어지는 몽고의 침략으로 인해 아나돌루 셀축이 속국이 되고, 쇠퇴하면서 아나돌루 셀축과 비잔틴 제국의 국경지역인 아나돌루 서부, 서북부 지역의 해안선을 따라 튜르크멘들은 공국들을 건국하여 독립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오스만조의 역사도 이 시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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