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쿠데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내가 유학을 하고있고, 터키라는 나라를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지만 이번 테러는 에르도안의 장기집권과 정적들을 없애기 위한 

자작극으로 보인다. 

1. 쿠데타 세력이 국가 수반들의 신변을 빠르게 확보하지 못하였다.
- 역사적으로 쿠데타는 국가 수반들의 신변을 먼저 확보하고, 정부기관, 치안기관, 보도기관을 장악하는게 순서이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 수반들의 신변도 확보하지 못하였고, 치안기관도 장악하지도 못하고, 기껏 보도기관만 장악했다. 정말 너무나도 미숙한 쿠데타이다.

2. 귈렌은 배후가 될수 없다
- 귈렌은 터키 군부시절을 보낸 인물이며, 그는 군부의 정치적 개입을 극도로 경계한 인물이다. 그가 권력을 잡기위해서 군부를 통원했다는 말은, 한국으로 치면 김대중, 김영삼이 군부인사들을 주도해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뒤집으려고 했다는 말과 같다. 정말 말도 안된다. 귈렌은 지금 병으로 요양중이다. 아푼 사람이 이런 계획을 준비했을까???

3. SNS를 할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쿠데타이다.
-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방송에 화상전화를 걸고 있는 에르도안을 보면 정말 말도 안나온다.

4. 쿠데타 세력들이 터키인들을 너무 무시했다.
- 그들은 긴 시간동안 군부통치를 받은 이들이다. 아타튀르크를 숭배하듯 하지만 그들의 맘 깊은 곳엔 군부통치의 아품, 고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를 알고있는 군부가 쿠데타라니 말도 안된다.

5. 쿠데타의 최대 이익은 에르도안이 가지게 될것이다.
- 그는 이번 쿠데타를 통해서 최후의 저항세력을 완벽히 거세하고, 개헌과 자신의 집권을 공고히, 더욱 공고히 할것이다. 이미 뉴스에 반 에르도안 세력을 숙청한다는 기사가 쏟아지고있다.

지금은 방학이라 한국에 있어서 화를 면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앙카라에 있을때도 많은 테러를 겪었고, 이번일도 그냥 테러급으로 생각이 들어서 감흥도 없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있는 내동생이 많이 놀랬을꺼 같고, 옆에 못있어줘서 많이 미안하다... 동생이 아무 탈없이 공부를 마치고 내가 터키에 귀국해서 빨리 얼굴이 보고싶다.....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수영, 믿음사 1장 4.칼리파제와 교황,황제제의 차이 이슬람 문명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주영, 민음사

 

1장 이슬람의 국가와 종교

 

4. 칼리파제와 교황, 황제제의 차이

 

-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정치권력을 대하는 것에 차이점과 공통점을 가진다.

기독교 세계나 이슬람 세계, 양자는 모두 각 수장에게 복종을 요구하면서 종교를 바탕으 로 세계 통치를 위한 유사한 주의를 천명하였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독교는 기존의 제도를 계승하면서, 옛 제도를 복제, 부활시킨 제도를 사용하였다.

기독교는 기존의 제도의 틀에서 황제, 교황이 나란히 존재하며 양자간에 상호 침범할 수 없는 권위가 존재하였다

교황은 지상에서 신의 대리인, 인간의 옹횬을 지배하며 인도하는 자이다.

황제는 인간의 육신에 관계하는 사항들을 다르는 임무를 가졌다.

독립된 두 권위 사이에 이해관게가 충동하여 두 세력은 충돌과 대립을 연속하였다.

 

- 칼리파제는 전혀다른 환경을 형성하였다.

기존의 제도가 발전한 것이 아닌 아랍의 베두인 사회에 신의 계시가 내렸고, 신앙공동체 가 국가가 되고 이는 국가에서 칼리파제가 출현하였다.

이슬람 국가에는 기독교 사회의 신성한 영적존재 교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칼리파는 어떠한 정신적 기능,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

칼리파는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에 불과하며, 종교의 해석은 울라마의 임무였다.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이 되기위한 성직, 수임식, 안수식과 같은 예식이 필요하지 않다.

 

- 이슬람의 종교관에는 예배와 종교행위 수행을 위한 기독교의 성직자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다.

칼리파 역시 평신도와 같은 지위이며, 울레마는 성법연구로 인해 존경을 받는 존재일 뿐 이다.

이슬람에서는 초인적 능력 예컨대 면죄, 파문과 같은 기독교의 교황, 성직자가 행사하는 권세가 없다.

이맘은 모스크에 상주하는 예배인도자로 모스크(Mosque) 구성원의 추대로 선출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성직자 제도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

기독교는 성직자 계급이 존재, 이슬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칼리파는 절대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칼리파는 움마의 일원이며, 종교의 수호, 세속 정치에 대한 권한은 무슬림들의 바이아(충 성서약)를 통해서 형성, 계약의 산물이다.

칼리파가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태만, 타락할 경우 직위 해제도 가능하였다.

 

- 칼리파제는 정교일치 체제이다.

움마의 통치권, 신도의 우두머리, 신앙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서양의 황제, 교황의 지위를 하나로 묶어 놓은 모양을 취한다.

 

- 칼리파제는 오늘날의 무슬림들에게도 원하는 종교 형태이다.

- 이슬람의 독특한 제도 칼리파제, 속세, 종교의 권위를 모두 가지지만 절대적이지 않으며, 부 분적인 권위만을 행사하는 아주 독특한 지위를 보여주었다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수영, 믿음사 1장 3.이슬람법(샤리아)과 국가 이슬람 문명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주영, 민음사

 

1장 이슬람의 국가와 종교

 

3. 이슬람법(샤리아)과 국가

 

- 무슬림 울라마들은 칼리파 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칼리파제의 고전 이론을 확립하였다.

꾸란, 하디스를 근원으로 이슬람 법을 구체화시킨 샤리아(신에 뜻에 이르는 길)를 만들었 다.

이슬람 법의 입법권자는 신으로 울라마들은 신의 말씀을 확인, 해석, 설명하는 것을 강 조하였다.

이슬람법 샤리아는 입법자가 신이므로 이론상 정대 선이며, 국가나 공동체 보다 우선하 며, 국가는 샤리아의 집행을 위해서 존재하였다.

 

- 이슬람법 샤리아를 통해서 옭은 일을 행하고, 악한일을 금하고자 하였다.

종교의 법을 통한 세속의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마으루파트, 문카라트를 구분하고 선을 지향하며, 악을 금하는 것을 이슬람국가의 목표 로 천명하였다.

 

마으루파트 - 절대선, 올바르고 선한것들, 의무사항: 파르드

                                             권장 요구사항: 마뜰루브

                                             허용사항: 무바르

문카라트 - 악한것들, 절대금지사항: 하람

                        금하고 피해야할 사항: 마크루흐

 

- 샤리아의 법 적용은 모두 평등하며 위정자, 민중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서양과 같이 교회법과 국가법이 구분한 것이 아니라 꾸란에서 나온 샤리아는 절대적이며 종교, 국가의 법으로 통용되었다.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수영, 믿음사, 1장 2.칼리파제사의 이상과 실체 이슬람 문명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주영, 민음사

 

1장 이슬람의 국가와 종교

 

2. 칼리파제사의 이상과 실체

 

-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그의 뜻을 계승하여 칼리파들이 등장하였다.

칼리파들은 초기 4대 까지 종교, 정치에 헌신하여 사명을 다하였다.

이후 우마이야 칼리파 시대에 접어들면서 칼리파제가 퇴색되기 시작하였다.

 

- 압바스 칼리파 시기 더욱 강력한 왕권적 칼리파 제도가 수립된다.

압바스조는 우마이야 조의 퇴색된 종교적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울라마(Ulama)들을 궁 정에 배속시킨다.

울라마들은 이슬람 신학, 법학 연구에 정통한 자들이며 그들은 칼리파제 존립에 영향을 주었고, 균형있는 칼리파제의 시행과 유지를 도모하였다.

 

- 압바스 칼리파제가 급격이 쇠퇴하면서 1258년 바그다드가 몰락하고, 이집트 맘룩(Mamluk) 에 의해서 재건되었다.

칼리파의 지배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고, 지방 중소 총독, 군주(Amir, Sultan) 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칼리파제는 움마의 종교적 수장이라는 형식적 지위로 전락하게된다.

 

- 1517년 맘룩이 오스만(Osman)에 정복되면서 칼리파는 이스탄불로 이동하였고, 200년 가까 이 칼리파 명칭은 사용되지 않았다.

18세기 말 자말 알 딘 알 아프가니(1838-1897)가 범 이슬람주의를 주창하면서 칼리파제 부흥론이 등장한다.

 

- 오스만은 칼리파제를 통해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몰락하는 제국을 수호하고자 노력하 였다.

칼리파제를 명분으로 무슬림을 단결시켜 서구에 대항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19243월 아타투르크가 칼리파제 폐지, 정교분리를 선언하면서 현재까지 칼리파 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수영, 믿음사 제 1장 이슬람의 국가와 종교, 1. 이슬람 공동체와 정교 일치 이슬람 문명

이슬람 칼리파제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아랍어를 영어 표기를 할려고 했으나 개인적인 한계로 ㅡㅡㅋ 옮기지 못하였다. 자세한것은 책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슬람 칼리파제사 - 손주영, 민음사

 

1장 이슬람의 국가와 종교

 

1. 이슬람 공동체와 정교 일치

 

- 아랍민족은 씨족, 집단이 이룬 소수공동체를 영위하였고 집단이 커져도 부족 이상의 정치 조직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기존의 독립적인 세력을 가진 민족들을 통합하기 위한 과정으로 강력한 권력이 필수적이었 다.

 

- 꾸란에 담긴 알라의 계시가 결집력을 제공

예언자 무함마드(570-632) 신의 계시를 통해 아랍인을 하나의 종교 공동체로 결집 시켰다.

동일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아랍민족은 연대의식을 갖게되었고,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믿 는자는 형제라는 동족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종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 예언자 무함마드는 무슬림 공동체 움마(Umma), 자미아를 결성하고 지하드를 통해서 공동 체는 급성장하였다.

지하드를 통한 전리품을 공정히 전사들에게 분배하면서 구성원간의 화합과 단결을 꾀하였 다.

자힐리야(Jahiliya:예언자의 복음 이전 시대, 무지) 이전의 무지에서 벗어나 최초의 무슬림 국가를 건설하는 다울라(Daula)를 세우게 되었다.

 

- 예언자 무함마드는 고질적인 부족들의 불신, 악습, 윤리적 타락을 척결하고 강력한 지도력 을 행사하였다.

무슬림 신도들을 인도하여 이교도와의 지하드를 충실히 수항하고, 뛰어난 종교 지도자의 역량을 수행하였다.

종교, 군사, 외교 모든 방면에서 움마 최고의 권위자, 결정권자였다.

이슬람 국가의 국가 언수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 서기 632년 예언자의 사후 이슬람 국가는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게승한 것은 칼리파들이 계승하였다.

 

1. 아부 바크르 (632-634)

2. 오마르 (634-644)

3. 오스만 (644-656)

4. 알리 (656-661)

아부 바크르, 오마르, 오스만, 알리 대에까지 전통 칼리파 시대(알 쿨리파 알 라쉬둔) 라고 부르며 이후 우마이야 왕조(661-750)가 건국된다.

칼리파와 예언자 무함마드와의 차이점

 

- 칼리파는 예언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움마 공동체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칼리파는 신의 사자 (라술 알라)’, 예언자 (안 나비)’의 기능을 예언자 무함마드로부터 계 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칼리파는 예언자가 아니다.

꾸란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신이 보낸 최후의 예언자로, 선대 예전자들의 계시를 보완, 순 화, 확장시키며 기존에 전해진 경전(Torah, 구약)을 신약(injil,인질)을 완성 시켜주는 존재 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통해서 종교는 완전해 졌으며 이것이 ‘Islam(이슬람)’이다.

칼리파는 무슬림들의 수장이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정치, 종교를 계승한 자이다.

칼리파제로 인해서 이슬람 국가는 정치, 종교의 권위를 행사하는 정교일치 사회가 되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국가와 종교관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독교는 초기 명확한 정교분리 사상을 가지지만 이후 세속의 문제에 개입하면서 17세기 에 다시금 분리되지만,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정교의 권위를 함께 행사하였고, 이를 칼리파들이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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